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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 -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習作

by 풀꽃처럼 2021. 11. 2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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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趣味)’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한 때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활 습관이라는 말이 있었다. 취미가 생활 습관이었다면 한국 성인은 기아 상태다. 2년 주기로 시행하는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의하면 2019년 성인은 연간 6권을 읽었고, 국민의 44%가 1년간 1권의 책도 읽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독서는 생활습관이 아닌 취미다. 즐기기 위해, 책을 감상하고 이해하며, 감흥을 느끼는 동반자다. 책 읽기는 삶이고 즐거움이며 내면과 대화하는 친구이자 스승이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친구집에서 빌려 봤던 서유기, 중학교 다닐 때는 도서관에서 셜록 홈즈 추리물을 좋아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책에 손이 닿는데로 읽었다. 한 때는 주제별로 책을 읽기도 했지만, 책 읽는 재미가 반감되어 다시 흥미가 이끄는 곳으로 책을 따라 다녔다. 책 속에서 소개되는 또 다른 책의 고리를 찾아 산능선을 타듯 책을 읽고 있다. 과거에는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면, 지금은 즐거움을 위해 책 속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대형 서점의 표어처럼 세상은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권의 좋은 책은 마음을 정화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잘 만든 영화를 보면 좋은 책을 읽은 것처럼 흐뭇하다. 아름다운 경치는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좋은 책이다. 어느 곳을 가던 놓여진 책부터 훑어 본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책은 그 사람의 지나온 기록을 확인하는 지름길이자 그 사람을 알아가는 좋은 나침반이다.

돌아보면 많은 책들이 책꽂이에 머물다 떠나갔다.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는 책들이 있다. 누렇게 내려 앉은 색바랜 내지와 책 곰팡이로 지난 세월을 말해 주는 책들이다. 내 인생의 좌표로 삼았던 책은 『닥터 노먼 베쑨(실천문학사)』이다. 캐나다 의사이면서 스페인 내전과 중국 혁명에 참여했던 혁명가였던 노먼 베쑨의 일대기다. 눈에 보이는 질병의 치료보다는 보이지 않는 사회의 거대한 근본 악을 제거하기 위해 일생을 던졌던 위인이다. 이후 내 삶은 사회의 나타나는 현상보다는 그 밑에 흐르는 담론을 보기 위해 살았다. 파도가 일렁이는 건, 일시적 바람에 의해 떠밀려 다니지만 깊은 해저에는 바람과는 상관없이 거대한 조류가 흐르는 것처럼 그 조류를 보기 위해 살려고 했던 것 같다.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한겨레출판사)』는 내 생각이 과연 내 생각인지 의심해 보는 과정을 겪게 했다. 결론은 내 생각은 어차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뒤섞여 있어 독창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 현재의 판단이다. 내 생각을 고집할 이유도 상대방의 생각을 잘못되었다고 말 할 수 없다. 이 책의 부제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인데 과연 나는 그렇게 살았을까 의문이다. 밖에서 내 마음으로 들어온 책이 내 인생을 흔들어 왔다. 일그러진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보여준 박세일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1~3(돌베개)』 , 3학년 조직론 교수가 수업시간에 소개한 고원정의 『빙벽 1~9(해냄출판사)』은 군내부의 일그러진 영웅과 무너지는 과정을 다룬 내용이라 다음 편이 언제 나올지 조마조마 하며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도 영향을 미친 책들이 많다.

책꽂이에 놓여진 책들을 보노라면 내 살아온 궤적이 보인다. 다른 기억은 시간과 함께 잊혀지지만, 책장에 자리 잡은 책들은 어렴풋이 눈에 보이는 기억들이다. 이런 저런 책들이 마음 속에 벽돌 하나씩을 채워가며 현재에 이르렀다. 앞으로는 어떤 책들이 마음에 집을 지을지 궁금하다. 책장은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누구나의 마음 속에는 한 권의 책이 있다. 살아가는 건, 누구나 한 권의 책을 죽는 순간까지 한 글자씩 매일 꾹꾹 채워 나가는 거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빈 공간에 글자가 내려앉고, 삶 속에서 내려앉은 글자가 수정되거나 뿌리 내린다. 디지털이 누구나 책 한 권을 쓰게 만드는 편리한 구조를 만들었지만, 책이 홍수처럼 범람해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 10권을 읽으면 1권 정도가 책꽂이에 자리 잡을 정도다. 나의 책 읽기는 언제나 진행형이다. 그래서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방 한 켠에 마련된 내 지나온 얼굴들(일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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