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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에 대하여> 여전히 그대로인 장발장의 사회에 대하여

독서

by 풀꽃처럼 2021. 5. 3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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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주 4.3사건으로부터 20년이 흐른 뒤였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12년 남겨둔 때였다.  1968년 2월 베트남은 제주와 광주의 중간에 놓였다.  19살 처녀 응우엔티탄은 옷이 벗겨진 채 논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두 가슴은 난도질당해 피가 흘렀다.  20년 전 제주에 들어온 토벌대원들처럼, 12년 뒤 광주에 투입될 공수부대원들처럼, 마을에 들어온 해병대원들은 포악했다.  과거의 토벌대원들과, 미래의 공수부대원들과, 오늘의 해병대원들은 생김새가 닮았고 같은 언어를 썼다.
홍세화, <미안함에 대하여>

언제나 주류 미디어에선 볼 수 없는 곳의 아픔, 번영 뒤에 가려진 부분을 긁어내는 저자의 글들에 늘 반성한다.  청춘시절 '생각의 체계'를 자리잡는데 큰 부분을 차지했던 저자의 글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각자는 누군가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지이다.  국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직장생활 중 일본 방송국에 출장갈 일이 있어 저녁에 그들과 같이 식사를 할 때였다.  일본 방송국 기자출신의 팀장이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터트린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낮에는 통역이 필요하지만 밤 가벼운 술자리에는 술이라는 매개체가 통역을 대체하는 힘이 있기에, 떠듬떠듬 일본어와 제스쳐와 국적없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일본 역시 한국과 동아시아에 침략에 대한 사과를 해야한다"고 말하자 가벼운 술 자리가 가라앉았던 경험이 있다.

자신이 피해 본 기억은 오래 가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부분은 인간은 희한하게 기억력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빌려준 책은 기억하지만, 빌린 책은 잊어버리는 것처럼 인간은 그런 존재다.  

한국 역시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국가의 피해와 온갖 만행의 피해를 봤지만, 여전히 일본은 기세등등하게 한국을 업신여기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국 역시 과거 제주 4.3사건에 대해 오랫동안 국가는 침묵했었다.  광주 학살의 책임자인 전두환씨와 그의 세력들은 반성하지 않는 패거리 들이다.  대외적으로 베트남 전쟁의 가해자인 한국은 베트남에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삐뚤어진 존재인 인간, 비뚤어진 국가의 전형적인 괴물이 우리 속에 내재해 있다.  그런 내재된 괴물의 정체를 지금까지 까발려온 저자의 글들에 가슴이 아프면서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계층간의 두터운 장벽에 거대한 답답함만이 쌓인다.

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글로벌 가족', 비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다문화 가정'이라고 부르게 하는 것이 GDP 인종주의다.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교묘히 결합한 물신주의와 인종주의는 GDP 인종주의로 발전했다.

우리 속에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주입되어온 GDP인종주의를 반성한다.  이 사회의 기득권층이 형성한 프레임에 물든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다시 원점을 찾기 위한 이정표들이 책 속엔 가득하다.

이 번 책은 언론에 기고한 부분을 엮어서인지 머리 속에서 잘 엮이지 않는다.  그래도 주류 미디어에 실리지 않는 돈 안되는 기사일지라도, 이 사회의 장발장에 늙어가면서도 끝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는 그의 자세를 나는 본받았으면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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