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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산다는 건(4) : 산복도로 걷기 - 동구 부산진 일신여학교 ~ 증산공원 ~ 책마루 전망대 ~ 이중섭 거리

부산에 산다는 건

by 풀꽃처럼 2021. 12. 1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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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걸은 길 : 동구 부산진 일신여학교 ~ 부산포 개항가도 경사형 엘리베이터 ~ 동구 도서관 책마루 전망대 ~ 증산 공원 ~ 성북시장 웹툰 이바구길 ~ 만화 체험관 ~ 귀환 동포마을 ~ 이중섭 거리(희망길 100계단)

"부산의 역사는 산복도로에 있다"

오늘은 동구에 위치한 산복도로를 걷는다. 초량동과 감천동의 가파른 골목길에 비해선 다소 느슨한 경사도의 오르막이다. 초량동과 감천동의 산복도로가 관광형 골목으로 발전했다면, 범일동 일대의 산복도로는 생활형 골목길을 유지하고 있다.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차분하게 산복도로 골목을 거닐고 싶다면 걸을만한 곳이다.

부산진 일신여학교

좌천역 3번 출구에서 조금만 오르면 부산진 일신여학교가 있다. 1905년 서양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이다. 부산 최초의 근대 여성교육기관이다. 1919년 3·1운동시 이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부산 최초로 만세 운동을 주도한 뜻깊은 학교다. 현재 동래 여중과 동래 여고의 전신이다. 일신여학교의 골목에는 일제 강점시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들을 볼 수 있는 벽화가 꾸며져 있다.

부산항 개항가도 경사형 엘리베이터

부산진 일신여학교를 돌아 조금만 걸으면 부산항 개항가도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볼 수 있다. 평균 경사 37도, 계단 수가 190개로 주민들은 '지옥의 계단'이라 불렀다고 한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갈 동안 통유리를 통해 북항대교를 볼 수 있다. 전망은 초량동 168계단 보단 뛰어나다곤 할 수 없다. 이 엘리베이터는 2017년 엘리베이터 월드가 주최하는 세계 경사 엘리베이터 콘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주민의 불편을 덜어주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된 이 곳처럼 좀 더 많은 지역에 설치하는 것도 산복도로를 활성화시키는 장치일 듯 하다.

캔으로 장식된 담벼락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증산공원으로 가는 대로변에 온갖 캔으로 장식된 담벼락을 만났다. 맥주, 커피, 주스캔 등이 벽면과 옥상을 가득 장식했다. 기이한 집이다. 기이한 벽면에 기이한 문구도 붙여 놨다. '저승 사자님, 나중에 오세요. 책 읽어야 하니까요' 보기에 좋은 건 아니지만 특이하다. 저 안엔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올법한 느낌이다.

동구 도서관 옥상, 책마루 전망대. 연필 기둥과 연필 꽂이
동구 도서관 옥상, 책마루 전망대 뒤로 부산항 대교와 영도가 보인다.
동구 도서관 옥상, 책마루 전망대. 하늘에서 빛들이 커튼처럼, 오로라처럼 북항위에 내린다.
동구 도서관 옥상, 책마루 전망대에서 바라 본 동구 일대 산복도로 밀집된 집들. 감천마을보다 더 밀집도가 높아 보인다.

여러 곳의 도서관을 다녀 봤지만 동구만의 특이한 장소를 만났다. 영도구의 영도 도서관은 열람실에서 바다가 시원하게 보인다. 고신대학교 열람실에선 오륙도를 포함한 더 넓은 바다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고신대 도서관은 가장 전망이 뛰어난 도서관이다. 3년에 5만원만 지불하면 열람실과 책을 마음껏 빌려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이곳 동구 도서관은 옥상의 전망대에선 산복도로의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북항을 조망하는 산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책을 테마로 책을 읽는 캐릭터와 책을 형상화한 의자, 연필 기둥과 연필 꽂이 장식이 도서관에 어울린다. 야경이 볼 만하다는데 산복도로는 어디든 야경은 기본 보장한다.

증산왜성 일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부산진성을 함락한 후 이곳 증산공원에 증산왜성을 쌓았다. 이 곳은 일본군의 병력과 물자를 공급하는 병참기지 역할을 했다. 당연히 일본군이 임란시 최초로 세운 왜성이다.

동구 만화 체험관 외관
동구 만화체험관 내부
박수동 만화
최초의 한국 만화(1909.6.2)

범일동 웹툰이바구길로 특화된 거리다. 만화 체험관은 조금 작다는 느낌이다. 어릴적 추억과 만화 역사를 좀 더 다뤘으면 좋을듯 하다. 상징적으로 설치한 느낌이다.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웹툰 이바구길 특화 거리 조형물
성북시장 웹툰 이바구길

성북시장 전체 골목을 만화로 표현해 지루하지 않다. 아기자기하게 걷기 좋은 시장 골목이다. 시장 물건 보다는 간판과 건물을 장식한 만화를 보면서 재미있게 걸었다.

이중섭 화가가 머물렀던 범일동 귀환동포 마을
범일동 풍경(1951). 이중섭 作
이중섭 전망대
이중섭 거리이면서 희망 100계단

이중섭 화가는 1.4후퇴시 남하해 이곳 범일동 판잣집에서 머물면서 작품도 남겼다. 이중섭의 아내 마사코는 "범일동 1497번지의 판잣집에 거주했을 때가 정말 행복했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아쉬운 건 이중섭 진품이 한 점도 없다. 서귀포의 이중섭 미술관에서 보았던 그의 작품 없이 추억만 보았다. 서귀포의 이중섭 거리에 비하면 상당히 초라하다.

국립 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2021.9.8 촬영)
국립 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2021.9.8 촬영)

서울 친구집에 들렀을때 국립 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관람할 기회가 생겼다.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서 볼 수 없었던 황소 그림이다. 당시 미술관에선 삼성가에서 이중섭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해서 영영 볼 수 없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던 그의 황소를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서 봤을 때의 기쁨이란.

오늘은 동구 좌천동에서 시작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흔적과 특이했던 동구 도서관 책마루 전망대, 웹툰으로 특화된 시장 골목과 이중섭 거리를 거니며 부산의 전근대를 돌아봤다. 감천동과 초량동의 산복도로와는 다른 맛이 있는 도로다.  '부산 역사는 산복도로에 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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