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숙소 베란다에서 바라본 삼성산 능선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페스추리처럼 꾸겨진 능선들이 직선의 태양빛이 들어오면서 우락부락한 근육처럼 몸매가 드러난다. 도시에선 맞을 수 없는 풍경이다. 구름의 양, 온도와 습도에 따라 빛이 투과되면서 공기층은 허공에 뿌려둔 수채화처럼 하늘 가득 번진다. 어제와 오늘 새벽 풍경이 다른 기분좋은 화폭이다. 하늘과 능선과 그 공간을 채운 공간이란 거대한 화폭을 자유자재로 매일 다른 그림을 그리는 존재가 누가 있을까. 내일은 자연이 어떤 그림을 그려 놓을지 궁금하다.
맑고 차가운 공기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아침 산책은 도시의 헬스클럽에서 땀을 비처럼 쏟아내는 운동과는 다른결이다. 천천히 길을 걸으며, 맑은 공기를 허파에 밀어 넣고,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에서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며 정수된다.
좌측으로 난 길은 반달곰 생태학습장과 서산대사길이다. 오늘 농촌체험을 할 반달곰 생태학습장의 청소를 머리속에 그리며 서산대사길로 접어든다. 전국을 열풍처럼 훑고 지나간 '길 시리즈'는 제주 올레의 서명숙 이사장의 발명품이다. 그녀가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한국에도 걷는 길을 만들려고 제주도 둘레길을 만들었다. 끊어진 골목길을 이어붙이고, 주민과 해병대원 등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오늘의 올레길을 만들었다. 한 때 제주도는 주말이면 올레길을 걷기 위해 들르는 성지같은 코스였다. 지금은 클린 올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가 했고, 일본과 몽고에도 올레길을 수출했다. 한 사람의 집념으로 이룬 결과물이 국내와 국외로 확장된 멋진 문화 상품이 되었다.
서산대사가 다녔었을 길을 따라 지리산 국립공원 의신마을 화개천을 따라 신흥마을까지 4.2km 구간을 내었다. 아침 산책은 왕복 1시간 분량으로 정하고, 한사람 정도 걷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회색의 단조로운 나무와 이끼낀 돌, 작년에 떨어져 벌어진 밤송이를 지나 참꽃이 꽃을 먼저 틔웠다. 흑백 화면에 홀로 분홍빛으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참꽃은 언제나 푸른 잎보다 성급하게 피어난다. 봄꽃은 단조로운 겨울 나무들 사이에서 우선 봄이 왔음을 확인하는 상징물이다.
오전 과업을 시작하며 반달곰 우리로 체험자들은 향한다. 우리에 들어있던 곰을 사육장 마당으로 내몬 후 잠시 곰순이 모녀를 관찰한다. 어미는 22세(인간나이 154세), 딸은 17세(인간나이 119세)로 장수하고 있다. 야생에서 생활하는 곰보다는 보다 안정된 공간에서 생활하기에 수명은 길다는 마을관계자의 설명이다.
모두들 열심히 모녀의 우리를 치우고 있다. 먼저 두툼한 짚단과 배설물을 걷어낸다. 짙은 개냄새와 유사하다. 처음에는 '욱'하는 느낌이었지만, 곧 익숙해진다. 자욱한 먼지속에서 너나할 것없이 다들 열심이다. 짚과 배설물을 걷어낸 후 바닥에 들어붙은 배설물을 긁어내고, 물청소를 한다. 오랜만에 몸이란 도구를 사용한다. 늘 손가락과 입으로만 노동했던 시절은 잊고, 몸이란 도구로 보람찬 노동을 했다. 본격적인 시골일에 비하면 모기 새끼발가락의 피 한방울 만큼도 안되겠지만 말이다.
주어진 농촌체험 활동을 마치고, 저녁에는 지역에 있는 하동도서관을 찾았다. 농촌에서도 찾기만 하면 얼마든지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 하동의 경우 멀티플렉스 영화관, 예술회관 등이 갖추어져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도서관이 곳곳에 위치해 있어 어딜가나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 농촌체험 기간에 맞춰 3월부터 하동도서관에서 '글쓰기'와 '현대시 감상' 반에 등록했다. 일과를 마친후 저녁에 할 수 있는 활동이다.
하동도서관은 도시의 도서관보다 훨씬 유리한 대출 조건이다. 10권(도시는 5권) 2주일이며 1주는 연장가능하다(도시는 연장 불가). 도시에서 읽을 수 있는 양과 시간이 많아 보다 여유롭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시골생활을 하다보면 불편한 점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실거주시 지역민의 텃세는 무시못할 것이다. 굴러온 돌이 이미 오랜시간 함께 한 돌들에 어울리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저런 장점과 단점 사항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대처한다면, 시골에서의 삶도 즐길만하다. 한 번 뿐인 인생, 단조롭게 살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는 것도 즐겁지 아니한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닌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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